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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이야기37

격동의 19세기 조선(19) - 손돌목 포격 사건과 초지진 전투 1871년 신미년 5월 30일, 강화 해역으로 이동한 아시아 함대는 포함 2척과 소형 함정 4척으로 탐사대를 편성하고, 6월 1일 정박지를 떠나 정오경 강화해협 입구에 이르렀다. 당시 강화해협 초지진에서 북쪽으로 갑곶 나루에 이르는 50리 해안선 포대에는 대포 70여 문이 배치되어 있었다. 광성보 인근 손돌목 돈대에는 지휘소가 설치되어 아시아 함대 탐사대의 활동을 감시했다. 아시아 함대의 탐사대가 오후 2시경 손돌목 어귀에 접어들자 지휘소의 포성을 신호로 하여 해안 포대가 탐사대를 향해 포격을 집중했다. 미군 탐사대도 응사함으로써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다. 아시아 함대의 포함 모노카시호가 8인치 대포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폭발탄을 연속 발사하자 조선군 포진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 약 15분 동안 조선군.. 2023. 5. 18.
격동의 19세기 조선(18) - 미국 정부의 대조선 강경 정책 청국 주재 미국 영사관은 1868년 5월 하순 조선 해역에서 즈푸항으로 돌아온 셰난도어호가 조사한 결과를 보고받았다. 그리고 5월 25일부로 본국 국무부에 제너럴 셔먼호 관련 소문이 모두 낭설이라고 보고했다. 9월 28일자 보고서에서는 조선 개항과 사절단 파견 문제를 건의했다. 그러나 해군 장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 후 1869년에 그란트 행정부가 출범하여 태평양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조선을 개국시키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외교 관계를 개설하기로 방침을 정하자 1870년 11월 외교 사절단에 관한 전권을 로우(F. F Low) 공사에게 부여했다. 로우 공사는 베이징에서 로저스(J. Rodgers) 제독 및 시워드 총영사를 초청해 대책을 숙의했다. 그리고 1871년 2월 .. 2023. 5. 16.
격동의 19세기 조선(17) - 제너럴 셔먼호 격침 사건 조사 1866년 9월 평양 대동강에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號)가 격침되었다. 이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9월 말부터 10월 초에 이르는 프랑스 극동 함대의 제1차 침공 때였다. 청국 주재 미국 영사는 10월 중순경 사건 전모를 청국주재 미국 공사관에 보고했다. 청국 주재 미국 대리공사는 10월 23일 청국 총리아문에 서한을 보내어 생존자가 있으면 귀환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미국 공사관은 청국의 총리아문에 적절한 제재조치를 강구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프랑스와 영국에 공동출병을 제의했다. 그러나 이들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 공사는 아시아 함대 사령관에게 진상 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미국 군함 와츄세트호가 조.. 2023. 5. 14.
격동의 19세기 조선(16) -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소 도굴 사건 조선 조야의 서양세력에 대한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1868년 오페르트(E.J. Oppert) 일당이 남연군(南延君) 묘소를 도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사건은 1866년 병인사옥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병인사옥 때 조선에서 탈출한 프랑스 신부 페롱과 신자 최선일 등은 청국에서 독일 상인 오페르트를 만났다. 그에게 조선 사정을 들려주자 오페르트는 현 국왕의 조부인 남연군 묘소를 도굴하여 그 시신과 부장품을 담보로 잡아 통상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게 되었다. 그는 1866년 3월 영국 선적의 상선을 타고 상하이에서 출항하여 충청도 금전리 해상을 정찰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8월 해미현 조금진 근해에 출현했다가 11일 청국으로 되돌아갔다. 1866년 8월 6일 오페르트가 영국 선적의 엠페러호(Emp.. 2023. 5. 6.
격동의 19세기 조선(15) - 제너럴 셔먼호 대동강 격침 사건 1866년 미국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의 대동강에 나타나 군민들과 무력 충돌하는 등 소요를 일으키다가 급기야는 소각되었다. 1871년 신미양요의 주요 원인이 된 사건이다. 미국 선적의 제너럴 셔먼호는 1866년 여름 청국의 텐진항에 입항한 후 비단·유리제품·아연판 등을 적재하고 7월 29일 조선을 향해 떠났다. 산둥반도 즈푸항에 들려서는 영국인 토머스(R.J. Thomas) 목사를 통역인으로 채용하는 등 선원도 보강했다. 이어 8월 중순 경 백령도의 두모포를 거쳐 평안도 용강현 다미면 부근으로 이동했다. 이때 조선 문정관이 이들을 방문하여 제너럴 셔먼호에 탑재한 각종 무기류들을 소개받았다. 그 후 제너럴 셔먼호가 황주목 삼전면의 급수문에 이르자 황주 목사 정대식이 식료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청국으로 되돌.. 2023. 4. 24.
격동의 19세기 조선(14) - 강화도 정족산성 전투 조선군은 순무 중군 이용희와 천총 양헌수의 지휘를 받아 긴급 출동했다. 그러나 1866년 10월 18일 통진부에 도착한 이래 10여 일 동안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형 어선을 징발하여 잠입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11월 1일 어선 5척을 확보하여 덕포 나루에 숨겼다. 천총 양헌수가 이끄는 선발대 38명을 선두로 하여 11월 6일 정오경부터 덕포 나루로 이동하면서 침투작전이 시작되었다. 이날 저녁 무렵에 후속부대가 도착하여 선발대와 합류했다. 11월 7일 날이 어두워지자 제1진 170명이 3척으로 광성 나루에 상륙하여 정족산성으로 들어갔다. 제2진과 제3진도 8일 새벽 정족산성에 진입했다. 이와 같이 조선군 5백여 명은 비밀리에 집결하여 차기 작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조선군이 11월 8일 정족산성..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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