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북벌3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7】 제2차 나선 정벌-나선정벌이 남긴 것.(끝) 경제 사정 악화와 변방 안정 대책비록 청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지만, 나선정벌은 당시 북벌 의지를 불태우고 있던 국왕 효종이 실전을 통해 조선군의 전투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효종의 적극적인 북벌 준비가 없었더라면 출병 요청을 거절할 구실이 생겼을 것이며, 현실성 부족한 북벌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것이라는 최근 연구자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조선군 출병부대가 두만강을 건너 만주 지역으로 들어간 후에 사간원(司諫院)에서는 변방 지역 주민의 생활안정과 국방력 강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강구할 것을 건의했다. 제1차 출정과 마찬가지로 제2차 출정 역시 함경도에서 추진된 실정을 감안하여 함경도 지역 주민의 생활 안정과 방위력 증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함경도가 도성에서 가장 멀리 떨.. 2024. 8. 1.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0】 조선의 군사력 증강과 청의 견제-효종의 북벌의지와 현실적 난관(2-2) 청의 화약무기 감시 청나라가 조선에 조총 100자루를 요청한 것이 오로지 그들 군사를 무장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는지, 조선이 전력을 강화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데 목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조선의 전력 강화 차단이라는 일차적인 목적과 동시에 청군의 군사력 강화라는 부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효종은 3월 16일 돌아가는 청 사절단을 도성 밖 교외로 나가서 전송했다. 그런데 3월 말에 또다른 청국 사절단이 입국했다. 조선이 화약 원료인 염초(焰硝)에 관한 금지법을 어겼다는 트집을 잡고 이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입국한 것이다. 조선 조정은 대통관 이일선(李一善)과 김덕생(金德生)의 접촉 창구로 차비역관 장현(張炫)과 현덕우(玄德宇)를 임명했다. 이일선은 조선인 출신으로.. 2024. 4. 17.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8】 제1차 나선정벌 전투가 남긴 것 안정을 되찾은 변경 지역 조선은 제1차 출병부대가 출발하기 직전인 1654년 5월경 경원 동북쪽 두만강 대안에 위치한 훈춘 부락의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비변사는 동북 지역의 군사 요충지 닝구타가 국경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므로 경계 태세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인재를 등용하고 군민의 단결심을 고취시켜 각종 군사시설을 정비함으로써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이다. 호조 정랑 이지형(李之馨)도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해 6월 닝구타와 훈춘의 두 지역이 국경 시장인 북관개시를 열어달라고 강요하는 등 날로 위협적으로 나오고, 두만강의 사이에 두고 이들과 마주보는 지역의 변방 주민들은 여러 가지 물건들을 거의 다 빼앗기다시피 하여 더욱 궁.. 2024. 4. 3.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