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북병영3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5】 제2차 나선 정벌-철수 문제. 2-1 청군의 귀국 보류 지시 조선군은 청군과 함께 작전 지역에서 철군하기 시작했다. 1658년 6월 14일 날씨는 흐렸으나 동풍이 세차게 불어 쉽사리 쑹화 강 상류로 항진할 수 있었다. 15일에는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마저 잠잠했으나 상류로 갈수록 수량도 적어서 매우 느리게 항진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청군 지휘부는 전투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여 16일에 북경의 중앙 정부로 발송했다. 이때 조선군의 인명 피해 상황을 전사자 8명과 부상자 25명으로 기록했는데, 청군과 차별하지 않고 1등부터 5등까지 다섯 단계로 세분하여 보고했다. 이날 보고서에서 청군의 인명 피해 상황도 처음 알려졌다. 육군 80여 명과 수군 30여 명이 전사하고 20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반면에 러시아 원정대는 사령관 스테파노프를.. 2024. 7. 28.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6】 나선정벌 전투 지역으로 이동 조선군 참전 현황 조선의 나선정벌 참전은 청군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그동안 북벌을 위해 비밀리에 양성해 온 조선군의 전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묘·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힘들여 양성한 군사력을 오히려 적국을 지원하는데 투입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함경도 북병영(北兵營)의 병마우후(兵馬虞候)인 변급(邊岌)을 출병부대 사령관으로 선임한 것이다. 오늘날 변급에 대해 전하는 기록은 매우 적다. 국왕 비서실인 승정원이 기록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의하면 1628년(인조 6) 8월 17일 별시(別試) 무과 초시에 시험 감독관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변급은 다른 5명의 감독관과 함께 제2 고사장에 배치되어 무.. 2024. 3. 20.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5】 출병계획 수정 보완 함경도 북병영 병마우후 변급, 파병군 사령관에 선임 출병부대 사령관에 선임된 병마우후 변급이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군사들이 작전을 종료하고 무사히 개선하는 일이었다. 특히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청을 지원하기 위해 싸우다가 질병을 앓는 등 위급한 상황에 처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조치하였는데, 그의 건의에 따라 군사 10〜15명당 사지마(私持馬) 1필씩을 보유하도록 허락하여 유사시에 서로 구제할 수 있도록 했다. 영장과 군관 2명·소통사(小通事) 2명·기수 4명에게도 사지전마(私持戰馬)를 지급해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이역만리 타국에 출병하여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7명에게 복마(卜馬) 1필씩을 배정한 것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추가로 사마(私馬)를 끌고 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려 한 의도.. 2024. 3. 13.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