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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급7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2】 제2차 나선 정벌-헤이룽 강으로 출동하다(2-1) 두만강 너머 만주로 조선군 신류 사령관이 남긴 《북정록》을 중심으로 제2차 출병 전체 과정을 복원해보면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신류는 《북정록》이 시작되는 1658년 4월 6일 회령부에서 조총수의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최초로 실시한 조총 사격 훈련에서 51명이 표적에 명중시켰다. 몇 명이 사격 훈련에 참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족스러운 성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 이튿날에는 군사들에게 개인 장비를 지급하면서 철저히 정비하도록 했다. 16일 경원 부사가 송별연회를 열어준 데 이어 18일에는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김시성이 위로연을 베풀어 이들의 장도를 격려했다. 북병사 김시성은 경상 병사를 거쳐 전년도 6월에 부임한 무신 출신이다. 그는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모시고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 2024. 5. 1.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1】 제2차 나선 정벌 준비 조선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1658년(효종 9, 청 세조 순치 15) 3월 초 차사(差使) 이일선(李一先)이 청국 세조의 칙서를 휴대하고 입국했다. 이일선은 전년 3월 말에 입국했던 대통관 이일선(李一善)과 동일 인물로 보인다. 효종은 국왕의 일상 집무실인 희정당(熙政堂)에서 맞이했다. 효종은 청국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대담을 나누었다. 이일선:대국이 군병을 동원하여 나선을 토벌하려는데 군량이 매우 부족합니다. 조선에서 군사적으로 도와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선에서 5개월치의 군량을 지원해주십시오. 효 종:적의 형세는 어떠한가? 이일선:적군은 1,0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나, 저희가 이처럼 달려오게 된 것은 북로(北路)에 비축한 군량이 없어서 조선의 곡식을 수송하여 군량으.. 2024. 4. 24.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8】 제1차 나선정벌 전투가 남긴 것 안정을 되찾은 변경 지역 조선은 제1차 출병부대가 출발하기 직전인 1654년 5월경 경원 동북쪽 두만강 대안에 위치한 훈춘 부락의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비변사는 동북 지역의 군사 요충지 닝구타가 국경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므로 경계 태세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인재를 등용하고 군민의 단결심을 고취시켜 각종 군사시설을 정비함으로써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이다. 호조 정랑 이지형(李之馨)도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해 6월 닝구타와 훈춘의 두 지역이 국경 시장인 북관개시를 열어달라고 강요하는 등 날로 위협적으로 나오고, 두만강의 사이에 두고 이들과 마주보는 지역의 변방 주민들은 여러 가지 물건들을 거의 다 빼앗기다시피 하여 더욱 궁.. 2024. 4. 3.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7】 제1차 나선정벌 전투 조선군을 선봉에 세우려는 청군의 속셈 러시아 원정대가 탄 전선은 조선군이 청군과 함께 타고 간 대형 화피선보다 훨씬 컸던 것으로 보인다. 개선한 직후에는 상세한 내용이 보이지 않다가 이듬해(1655) 4월 23일 효종이 참석한 가운데 사령관 변급이 구두로 보고한 것이 가장 자세하다. 당시 변급은 윤대 무신(輪對武臣)으로서 주강(晝講)에 참석했다. 주강은 4품 이상의 무신이 매일 교대로 회의에 참석하여 혹시 있을 국왕의 질문에 대비하는 제도인데, 마침 변급의 차례가 되자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효종이 참석한 가운데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인 《시경(詩經)》〈시구(鳲鳩)〉편을 강독하는 절차가 끝나자 변급이 직접 보고했다. 효종이 추가 질문을 하고 다시 변급이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이때 보고 내용의 줄거리는.. 2024. 3. 27.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6】 나선정벌 전투 지역으로 이동 조선군 참전 현황 조선의 나선정벌 참전은 청군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그동안 북벌을 위해 비밀리에 양성해 온 조선군의 전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묘·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힘들여 양성한 군사력을 오히려 적국을 지원하는데 투입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함경도 북병영(北兵營)의 병마우후(兵馬虞候)인 변급(邊岌)을 출병부대 사령관으로 선임한 것이다. 오늘날 변급에 대해 전하는 기록은 매우 적다. 국왕 비서실인 승정원이 기록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의하면 1628년(인조 6) 8월 17일 별시(別試) 무과 초시에 시험 감독관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변급은 다른 5명의 감독관과 함께 제2 고사장에 배치되어 무.. 2024. 3. 20.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5】 출병계획 수정 보완 함경도 북병영 병마우후 변급, 파병군 사령관에 선임 출병부대 사령관에 선임된 병마우후 변급이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군사들이 작전을 종료하고 무사히 개선하는 일이었다. 특히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청을 지원하기 위해 싸우다가 질병을 앓는 등 위급한 상황에 처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조치하였는데, 그의 건의에 따라 군사 10〜15명당 사지마(私持馬) 1필씩을 보유하도록 허락하여 유사시에 서로 구제할 수 있도록 했다. 영장과 군관 2명·소통사(小通事) 2명·기수 4명에게도 사지전마(私持戰馬)를 지급해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이역만리 타국에 출병하여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7명에게 복마(卜馬) 1필씩을 배정한 것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추가로 사마(私馬)를 끌고 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려 한 의도..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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