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와 이야기/전쟁이야기25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1】 제2차 나선 정벌 준비 조선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1658년(효종 9, 청 세조 순치 15) 3월 초 차사(差使) 이일선(李一先)이 청국 세조의 칙서를 휴대하고 입국했다. 이일선은 전년 3월 말에 입국했던 대통관 이일선(李一善)과 동일 인물로 보인다. 효종은 국왕의 일상 집무실인 희정당(熙政堂)에서 맞이했다. 효종은 청국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대담을 나누었다. 이일선:대국이 군병을 동원하여 나선을 토벌하려는데 군량이 매우 부족합니다. 조선에서 군사적으로 도와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선에서 5개월치의 군량을 지원해주십시오. 효 종:적의 형세는 어떠한가? 이일선:적군은 1,0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나, 저희가 이처럼 달려오게 된 것은 북로(北路)에 비축한 군량이 없어서 조선의 곡식을 수송하여 군량으.. 2024. 4. 24.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0】 조선의 군사력 증강과 청의 견제-효종의 북벌의지와 현실적 난관(2-2) 청의 화약무기 감시 청나라가 조선에 조총 100자루를 요청한 것이 오로지 그들 군사를 무장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는지, 조선이 전력을 강화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데 목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조선의 전력 강화 차단이라는 일차적인 목적과 동시에 청군의 군사력 강화라는 부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효종은 3월 16일 돌아가는 청 사절단을 도성 밖 교외로 나가서 전송했다. 그런데 3월 말에 또다른 청국 사절단이 입국했다. 조선이 화약 원료인 염초(焰硝)에 관한 금지법을 어겼다는 트집을 잡고 이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입국한 것이다. 조선 조정은 대통관 이일선(李一善)과 김덕생(金德生)의 접촉 창구로 차비역관 장현(張炫)과 현덕우(玄德宇)를 임명했다. 이일선은 조선인 출신으로.. 2024. 4. 17.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9】 조선의 군사력 증강과 청의 견제-효종의 북벌의지와 현실적 난관(2-1) 청의 조총 요구 효종은 청나라에 대한 복수 이데올로기인 ‘북벌(北伐)’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었다. 이 때문에 즉위 초부터 청의 감시를 피해가며 군사력 강화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특히 금위영(禁衛營) 군사들의 복색(服色)과 옷 형태를 실용적으로 개조하는 조치를 단행한 것은 효종의 관심이 군사력 증강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금위 장사(禁衛將士)들의 경우는 활동이 용이하도록 소매 짧은 군복으로 개선하고, 기타 위졸(衛卒)들의 군복도 선명한 색상의 화려한 비단으로 제작하였다. 실질적 국방군인 중앙군의 사기를 높이고 위상을 강화하려는 조치였다. 즉위 8년째인 1657년 1월에 효종은 조정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훈련대장 이완에게 훈련도감의 군사력에 대해 물었다. 이때 이완의 보고에 의하면 훈.. 2024. 4. 10.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8】 제1차 나선정벌 전투가 남긴 것 안정을 되찾은 변경 지역 조선은 제1차 출병부대가 출발하기 직전인 1654년 5월경 경원 동북쪽 두만강 대안에 위치한 훈춘 부락의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비변사는 동북 지역의 군사 요충지 닝구타가 국경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므로 경계 태세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인재를 등용하고 군민의 단결심을 고취시켜 각종 군사시설을 정비함으로써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이다. 호조 정랑 이지형(李之馨)도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해 6월 닝구타와 훈춘의 두 지역이 국경 시장인 북관개시를 열어달라고 강요하는 등 날로 위협적으로 나오고, 두만강의 사이에 두고 이들과 마주보는 지역의 변방 주민들은 여러 가지 물건들을 거의 다 빼앗기다시피 하여 더욱 궁.. 2024. 4. 3.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7】 제1차 나선정벌 전투 조선군을 선봉에 세우려는 청군의 속셈 러시아 원정대가 탄 전선은 조선군이 청군과 함께 타고 간 대형 화피선보다 훨씬 컸던 것으로 보인다. 개선한 직후에는 상세한 내용이 보이지 않다가 이듬해(1655) 4월 23일 효종이 참석한 가운데 사령관 변급이 구두로 보고한 것이 가장 자세하다. 당시 변급은 윤대 무신(輪對武臣)으로서 주강(晝講)에 참석했다. 주강은 4품 이상의 무신이 매일 교대로 회의에 참석하여 혹시 있을 국왕의 질문에 대비하는 제도인데, 마침 변급의 차례가 되자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효종이 참석한 가운데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인 《시경(詩經)》〈시구(鳲鳩)〉편을 강독하는 절차가 끝나자 변급이 직접 보고했다. 효종이 추가 질문을 하고 다시 변급이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이때 보고 내용의 줄거리는.. 2024. 3. 27.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6】 나선정벌 전투 지역으로 이동 조선군 참전 현황 조선의 나선정벌 참전은 청군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그동안 북벌을 위해 비밀리에 양성해 온 조선군의 전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묘·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힘들여 양성한 군사력을 오히려 적국을 지원하는데 투입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함경도 북병영(北兵營)의 병마우후(兵馬虞候)인 변급(邊岌)을 출병부대 사령관으로 선임한 것이다. 오늘날 변급에 대해 전하는 기록은 매우 적다. 국왕 비서실인 승정원이 기록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의하면 1628년(인조 6) 8월 17일 별시(別試) 무과 초시에 시험 감독관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변급은 다른 5명의 감독관과 함께 제2 고사장에 배치되어 무.. 2024. 3. 20. 이전 1 2 3 4 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