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정축화약3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3】 청의 출병 요청과 제1차 출병 준비 나선은 어떤 나라인가? 청나라 조정은 토벌군을 편성하면서 최신 화약 병기를 제압할 조선군 정예 조총수의 지원을 요청하는 사절을 긴급히 파견했다. 비변사(備邊司)는 청나라 역관(譯官) 한거원(韓巨源)이 청 세조의 칙서를 가지고 입국하고 있다는 사실을 1654(효종 5년) 1월 28일 국왕 효종에게 보고했다. 압록강 남안의 의주부(義州府) 부윤이 직속 상관인 평안도 관찰사(감사)에게 보고한 상황이다. 한편 한거원을 청에 귀화한 조선인으로 추정하는 주장도 있으나, 《승정원일기》인조 22년(1644) 4월 30일 기록에 친동생 한명철(韓明哲)이 평안도 창주(昌州)에서 80세를 바라보는 노모를 모시고 있다고 했으니 조선인이 분명해 보인다. 한거원이 조선에 입국하는 목적은 당시 평안 감사인 허적(許積)이 사절단을 .. 2024. 2. 28.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 조선과 청의 전쟁-치욕적 패배 조선은 17세기 초반 국왕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으로 명(明)과 후금(後金, 1627년 淸으로 개칭)의 패권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인조반정(仁祖反正,1623) 이후로 집권한 세력은 노골적인 배금친명(排金親明) 정책을 추진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명분을 내세웠다. ‘조선은 명과 함께 200여 년간 의리로는 곧 군신이며 은혜로는 부자와 같은 관계이며, 임진년에 재조(再造)해 준 그 은혜는 만세토록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광해는 배은망덕하여 천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속으로 다른 뜻을 품고 오랑캐에게 성의를 베풀었으며, 기미년 오랑캐를 정벌할 때는 은밀히 도원수를 시켜 동태를 보아 행동하게 하여 끝내 전군이 오랑캐에게 투항함으로써 추한 소문이 널리 퍼지게 했다. 명의 사신이 조선에 왔을 때 그를 구속.. 2024. 2. 14. 한국의 성곽 공방전 7-6. 淸軍의 남침과 남한산성 공방전(1636∼1637) 조선은 16세기 말 해양세력 일본의 침공을 받고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그로부터 30여 년도 채 지나지 않은 17세기 초반에 대륙세력 여진족(女眞族)의 대대적 침공을 받았다. 정묘호란(丁卯胡亂)으로 불리는 첫 번째 침공은 1627년으로 국호를 ‘후금(後金)’이라고 부르던 시기며, 1636년의 두 번째 침공인 병자호란(丙子胡亂)은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바꾼 직후다. 이 병자호란 때 조선 국왕 인조(仁祖)와 조정 중신들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입성하여 최후의 수성전을 전개한 것이다. 후금은 1616년 건주여진(建州女眞)의 추장 누르하치(奴兒哈赤)가 세운 국가다. 앞서 명은 후금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정벌전쟁을 단행하였고, 조선에 지원군 파병을 요청해 왔다. 당시 국왕 광해군(光海君).. 2024. 1. 8.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