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02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0】 조선의 군사력 증강과 청의 견제-효종의 북벌의지와 현실적 난관(2-2) 청의 화약무기 감시 청나라가 조선에 조총 100자루를 요청한 것이 오로지 그들 군사를 무장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는지, 조선이 전력을 강화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데 목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조선의 전력 강화 차단이라는 일차적인 목적과 동시에 청군의 군사력 강화라는 부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효종은 3월 16일 돌아가는 청 사절단을 도성 밖 교외로 나가서 전송했다. 그런데 3월 말에 또다른 청국 사절단이 입국했다. 조선이 화약 원료인 염초(焰硝)에 관한 금지법을 어겼다는 트집을 잡고 이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입국한 것이다. 조선 조정은 대통관 이일선(李一善)과 김덕생(金德生)의 접촉 창구로 차비역관 장현(張炫)과 현덕우(玄德宇)를 임명했다. 이일선은 조선인 출신으로.. 2024. 4. 17. 고덕천 주변 봄 풍경(2024.4.11) 2024. 4. 11.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9】 조선의 군사력 증강과 청의 견제-효종의 북벌의지와 현실적 난관(2-1) 청의 조총 요구 효종은 청나라에 대한 복수 이데올로기인 ‘북벌(北伐)’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었다. 이 때문에 즉위 초부터 청의 감시를 피해가며 군사력 강화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특히 금위영(禁衛營) 군사들의 복색(服色)과 옷 형태를 실용적으로 개조하는 조치를 단행한 것은 효종의 관심이 군사력 증강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금위 장사(禁衛將士)들의 경우는 활동이 용이하도록 소매 짧은 군복으로 개선하고, 기타 위졸(衛卒)들의 군복도 선명한 색상의 화려한 비단으로 제작하였다. 실질적 국방군인 중앙군의 사기를 높이고 위상을 강화하려는 조치였다. 즉위 8년째인 1657년 1월에 효종은 조정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훈련대장 이완에게 훈련도감의 군사력에 대해 물었다. 이때 이완의 보고에 의하면 훈.. 2024. 4. 10. 검단산 등산로에 진달래꽃이 진다.(2024.4.8) 2024. 4. 9. 청도의 옛 중심지, 화양읍성과 유적 2024. 4. 7. 검단산 등산로의 진달래 꽃(2024.4.1) 2024. 4. 4.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3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