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훙타이지2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0】 조선의 군사력 증강과 청의 견제-효종의 북벌의지와 현실적 난관(2-2) 청의 화약무기 감시 청나라가 조선에 조총 100자루를 요청한 것이 오로지 그들 군사를 무장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는지, 조선이 전력을 강화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데 목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조선의 전력 강화 차단이라는 일차적인 목적과 동시에 청군의 군사력 강화라는 부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효종은 3월 16일 돌아가는 청 사절단을 도성 밖 교외로 나가서 전송했다. 그런데 3월 말에 또다른 청국 사절단이 입국했다. 조선이 화약 원료인 염초(焰硝)에 관한 금지법을 어겼다는 트집을 잡고 이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입국한 것이다. 조선 조정은 대통관 이일선(李一善)과 김덕생(金德生)의 접촉 창구로 차비역관 장현(張炫)과 현덕우(玄德宇)를 임명했다. 이일선은 조선인 출신으로.. 2024. 4. 17.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 조선과 청의 전쟁-치욕적 패배 조선은 17세기 초반 국왕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으로 명(明)과 후금(後金, 1627년 淸으로 개칭)의 패권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인조반정(仁祖反正,1623) 이후로 집권한 세력은 노골적인 배금친명(排金親明) 정책을 추진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명분을 내세웠다. ‘조선은 명과 함께 200여 년간 의리로는 곧 군신이며 은혜로는 부자와 같은 관계이며, 임진년에 재조(再造)해 준 그 은혜는 만세토록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광해는 배은망덕하여 천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속으로 다른 뜻을 품고 오랑캐에게 성의를 베풀었으며, 기미년 오랑캐를 정벌할 때는 은밀히 도원수를 시켜 동태를 보아 행동하게 하여 끝내 전군이 오랑캐에게 투항함으로써 추한 소문이 널리 퍼지게 했다. 명의 사신이 조선에 왔을 때 그를 구속.. 2024. 2. 1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