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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유수부2

격동의 19세기 조선(21) - 조선의 서구 세력에 대한 인식 변화(2-1) 조선 조정은 프랑스 함대가 조선해역에서 빠져나간 직후인 1866년 11월 12일 도성 외곽지역에 배치했던 병력들을 복귀시키고, 계엄도 해제했다. 14일에는 강화유수부 복구 사업을 총괄할 심영 영조도감을 설치하기로 하고, 강화도 복구작업에 필요한 각종 물자와 경비·인력 등을 재정 담당 부서와 각 영문에서 전용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부여해 주었다. 그리고 프랑스 함대의 불법침입과 조선의 정당방위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홍보작업도 병행해 나갔다. 예컨대 부산의 왜관에 병인양요의 전후 과정을 자세히 기술한 문서를 비치하여 일본인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천주교 근절대책을 강구하면서 외세의 침입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을 고조시켰다. 동래부와 의주부 등지에는 서양 물품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2023. 6. 1.
격동의 19세기 조선(14) - 강화도 정족산성 전투 조선군은 순무 중군 이용희와 천총 양헌수의 지휘를 받아 긴급 출동했다. 그러나 1866년 10월 18일 통진부에 도착한 이래 10여 일 동안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형 어선을 징발하여 잠입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11월 1일 어선 5척을 확보하여 덕포 나루에 숨겼다. 천총 양헌수가 이끄는 선발대 38명을 선두로 하여 11월 6일 정오경부터 덕포 나루로 이동하면서 침투작전이 시작되었다. 이날 저녁 무렵에 후속부대가 도착하여 선발대와 합류했다. 11월 7일 날이 어두워지자 제1진 170명이 3척으로 광성 나루에 상륙하여 정족산성으로 들어갔다. 제2진과 제3진도 8일 새벽 정족산성에 진입했다. 이와 같이 조선군 5백여 명은 비밀리에 집결하여 차기 작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조선군이 11월 8일 정족산성..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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