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촉석루1 한국의 성곽 공방전 7-5. 日本軍의 西進과 진주성 공방전(1592∼1593)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4월 이후 일본군의 왕성하던 기세도 9월경부터는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이 무렵 김해성(金海城)에 집결한 일본군 2만여 명은 전라도 진입을 최종목표로 하면서 경상 우도의 요지인 진주성(晉州城)을 중간 점령목표로 삼았다. 일본군이 9월 하순부터 작전을 개시하자 경상우병사 유숭인(柳崇仁)이 지휘하는 2천여 명이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창원성과 함안성을 차례로 빼앗기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경상우병사 유숭인이 1천 5백여 명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퇴각하였으나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이 유숭인 군의 입성을 거부함에 따라 진주성 동문쪽 외곽지역에서 일본군과 10월 초에 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유숭인의 조선군은 진주성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분전하다가 유숭인을 비롯한 지휘부와 대다수 장병.. 2024. 1. 6.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