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척왜척양론1 격동의 19세기 조선(23) - 조선의 강경세력 득세 조선은 1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서구 열강의 침략세력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한 자구적 논리가 ‘위정척사’였다. 그 행동 방략이 ‘척양’과 ‘척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오페르트가 1880년 저술한 『금단의 나라 조선기행』에서 ‘프랑스 함대의 공격을 물리치고 절박한 위기에서 쉽사리 벗어나게 되자 자신들도 놀랄 정도로 기뻐했다.’고 한 말이 당시 조선 지도층의 인식을 잘 대변해 준다. 이는 곧 자부심으로 연결되었고, 서구 세력에 대한 강경정책으로 나타났다. 조선은 일본이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왕정을 복고한 후 국교 재개를 요청했을 때 국서에 찍힌 도장의 형식이 이전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부해 버렸다. 1870년 6월 초 독일 군함 헤르타(Her.. 2023. 6. 20.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