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나선 정벌2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7】 제1차 나선정벌 전투 조선군을 선봉에 세우려는 청군의 속셈 러시아 원정대가 탄 전선은 조선군이 청군과 함께 타고 간 대형 화피선보다 훨씬 컸던 것으로 보인다. 개선한 직후에는 상세한 내용이 보이지 않다가 이듬해(1655) 4월 23일 효종이 참석한 가운데 사령관 변급이 구두로 보고한 것이 가장 자세하다. 당시 변급은 윤대 무신(輪對武臣)으로서 주강(晝講)에 참석했다. 주강은 4품 이상의 무신이 매일 교대로 회의에 참석하여 혹시 있을 국왕의 질문에 대비하는 제도인데, 마침 변급의 차례가 되자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효종이 참석한 가운데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인 《시경(詩經)》〈시구(鳲鳩)〉편을 강독하는 절차가 끝나자 변급이 직접 보고했다. 효종이 추가 질문을 하고 다시 변급이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이때 보고 내용의 줄거리는.. 2024. 3. 27.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 조선과 청의 전쟁-치욕적 패배 조선은 17세기 초반 국왕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으로 명(明)과 후금(後金, 1627년 淸으로 개칭)의 패권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인조반정(仁祖反正,1623) 이후로 집권한 세력은 노골적인 배금친명(排金親明) 정책을 추진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명분을 내세웠다. ‘조선은 명과 함께 200여 년간 의리로는 곧 군신이며 은혜로는 부자와 같은 관계이며, 임진년에 재조(再造)해 준 그 은혜는 만세토록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광해는 배은망덕하여 천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속으로 다른 뜻을 품고 오랑캐에게 성의를 베풀었으며, 기미년 오랑캐를 정벌할 때는 은밀히 도원수를 시켜 동태를 보아 행동하게 하여 끝내 전군이 오랑캐에게 투항함으로써 추한 소문이 널리 퍼지게 했다. 명의 사신이 조선에 왔을 때 그를 구속.. 2024. 2. 14.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