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초지진2 격동의 19세기 조선(20) - 강화도 광성보 전투 미국 아시아 함대 상륙부대는 초지진을 점령한 후 강화해협을 따라 북상했고, 포함 모노카시호는 1871년 6월 11일 새벽부터 덕진진에 공격준비사격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덕진진의 조선군도 피해를 입고 후방으로 퇴각했다. 아시아 함대 상륙부대는 초지진 후방에서 야영한 후 11일 덕진진을 무혈로 점령하였다. 퇴각했던 조선군 수비대는 덕진진에 진입한 상륙부대에 기습 공격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 무렵 광성보 일대에는 진무영 중군 어재연(魚在淵)이 지휘하는 병력 5초가 투입되었으므로 전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그런데 아시아 함대의 해상 지원부대가 11일 정오 이후로 광성보 일대에 함포사격을 개시하고, 상륙부대도 대포 4문으로 조선군 진지에 포격을 가하자 광성 돈대를 중심으로 주둔한 어재연의 조선.. 2023. 5. 24. 격동의 19세기 조선(19) - 손돌목 포격 사건과 초지진 전투 1871년 신미년 5월 30일, 강화 해역으로 이동한 아시아 함대는 포함 2척과 소형 함정 4척으로 탐사대를 편성하고, 6월 1일 정박지를 떠나 정오경 강화해협 입구에 이르렀다. 당시 강화해협 초지진에서 북쪽으로 갑곶 나루에 이르는 50리 해안선 포대에는 대포 70여 문이 배치되어 있었다. 광성보 인근 손돌목 돈대에는 지휘소가 설치되어 아시아 함대 탐사대의 활동을 감시했다. 아시아 함대의 탐사대가 오후 2시경 손돌목 어귀에 접어들자 지휘소의 포성을 신호로 하여 해안 포대가 탐사대를 향해 포격을 집중했다. 미군 탐사대도 응사함으로써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다. 아시아 함대의 포함 모노카시호가 8인치 대포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폭발탄을 연속 발사하자 조선군 포진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 약 15분 동안 조선군.. 2023. 5. 18.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