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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19세기 조선(20) - 강화도 광성보 전투 미국 아시아 함대 상륙부대는 초지진을 점령한 후 강화해협을 따라 북상했고, 포함 모노카시호는 1871년 6월 11일 새벽부터 덕진진에 공격준비사격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덕진진의 조선군도 피해를 입고 후방으로 퇴각했다. 아시아 함대 상륙부대는 초지진 후방에서 야영한 후 11일 덕진진을 무혈로 점령하였다. 퇴각했던 조선군 수비대는 덕진진에 진입한 상륙부대에 기습 공격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 무렵 광성보 일대에는 진무영 중군 어재연(魚在淵)이 지휘하는 병력 5초가 투입되었으므로 전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그런데 아시아 함대의 해상 지원부대가 11일 정오 이후로 광성보 일대에 함포사격을 개시하고, 상륙부대도 대포 4문으로 조선군 진지에 포격을 가하자 광성 돈대를 중심으로 주둔한 어재연의 조선.. 2023. 5. 24.
격동의 19세기 조선(18) - 미국 정부의 대조선 강경 정책 청국 주재 미국 영사관은 1868년 5월 하순 조선 해역에서 즈푸항으로 돌아온 셰난도어호가 조사한 결과를 보고받았다. 그리고 5월 25일부로 본국 국무부에 제너럴 셔먼호 관련 소문이 모두 낭설이라고 보고했다. 9월 28일자 보고서에서는 조선 개항과 사절단 파견 문제를 건의했다. 그러나 해군 장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 후 1869년에 그란트 행정부가 출범하여 태평양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조선을 개국시키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외교 관계를 개설하기로 방침을 정하자 1870년 11월 외교 사절단에 관한 전권을 로우(F. F Low) 공사에게 부여했다. 로우 공사는 베이징에서 로저스(J. Rodgers) 제독 및 시워드 총영사를 초청해 대책을 숙의했다. 그리고 1871년 2월 .. 2023.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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