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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길 구봉산길 유형원 선생 묘  100년 후에 펼쳐진 실학의 꿈

 

영조가 높이 평가하여 널리 반포한 유형원 선생의 반계수록


유형원 선생의 묘가 위치한 백암면 석천리 황석마을은 그가 활동한 지역 중 하나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묘소가 이곳에 마련되었습니다. 그의 묘소는 정배산 동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유형원은 경세제민을 주장하며 제도 개혁을 추진하였고, 그의 저서인 '반계수록' 은 그의 사상과 이념을 담은 중요한 문헌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조선 후기에 있어서 경제와 사회구조에 대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제도 개혁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어, 조선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반계 유형원의 명성은 영조의 명령으로 '반계수록'이 인쇄되어 널리 알려지면서 더욱 높아졌으며 거의 이념과 저작은 후세에도 계속해서 기억되고 존경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유형원 선생 묘는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묘 좌우에 문인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영남길안내 경기옛길센터(031.231.8524/031.231.8550)

유형원선생묘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산 28-1

유형원 선생 묘
지정명:경기도 기념물 
소재지:용인시 백암면 석천리 산28-1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로서 근대사회의 새로운 학풍을 일으키는데 다리 역할을 한 반계 유형원(1622~1673)의 묘다. 유형원은 문화 유씨로 서울에서 태어나 5세부터 공부를 시작하였고, 7세에는 서경을 읽었으며, 20여 세에는 문장이 뛰어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효종 5년(1654) 진사에 급제한 후 수차에 걸쳐 벼슬에 추천되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전라도 부안에 내려가 일생을 그곳에서 살면서 농촌 사회의 현실을 스스로 체험하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학문 연구와 저술 및 제자 양성에 몰두하였다.

농촌에서 농민을 지도하는 한편 기아 구제의 긴급책을 마련하는 등 일반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에 직접 투신하였다. 또한 농민이 최저 기준량의 경작지를 가지는 토지제도의 개혁을 비롯하여 농경일치의 군제개혁, 부역의 균형 등을 주장하여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가 10여 년간 저작한 [반계수록] 26권에는 이상 국가 건설에 대한 그의 구상이 담겨져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묘역 구조는 봉분 앞에 묘비-혼유석-석상 향로석이 두었다.  석상 앞에는 장명등이 위치하고 그 좌우에 동자석, 망주석, 문인석이 각각 1쌍씩 있다. 유형원의 묘역에는 봉분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묘비가 있다. 앞쪽에는 영혼이 나와 제사를 받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다. 더 앞쪽 좌우에는 묘를 지키기 위해 세우는 석물인 문인석 1쌍이 있다. 봉분 주위에 반원형으로 둘러져 있는 담장은 1971년에 신설된 것이다.

유명조선국진사

증집의겸진선반계

유선생형원지묘

증숙인풍산심씨부좌

통훈대부 행 수안군수 신평 이공 문은지묘 숙부인 동래 정씨
가선대부 행 한성부윤 신평 이공 경항지묘 숙부인연일정씨

 

한택식물원
바오밥나무

 

백송
수국

한택식물원 경기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한택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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