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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2

17세기 조선 육군, 나선(러시아) 정벌에 출병.【13】 제2차 나선 정벌-헤이룽 강으로 출동하다(2-2) 조선 정벌군의 속사정조선군과 청군은 전선을 기다리면서 인근지역 주민들로부터 러시아 원정대의 움직임에 관한 첩보를 몇 차례 입수했다. 일란에 도착하기 직전인 14일 청군 지휘부는 러시아 전선들이 헤이룽 강 하구에 집결한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25일에는 러시아 전선 11척이 먼저 헤이룽 강 하구에 도착한 가운데 그 뒤를 따라 다른 11척이 계속해서 항진하고 있다는 첩보를 추가로 입수했다.이 같은 첩보를 제공한 주민들은 앞서 러시아 원정대에 부역(附逆)했다가 조선군과 청군 대부대가 진출하자 후환이 두려워서 다시 청군 쪽으로 돌아선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제공한 첩보를 액면대로 믿을 수만은 없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수로 정찰선 1척과 육로(陸路) 정찰 기병을 파견했다. 5월 27일에 돌아온 육로 정찰 기.. 2024. 5. 15.
한국의 성곽 공방전 7-6. 淸軍의 남침과 남한산성 공방전(1636∼1637) 조선은 16세기 말 해양세력 일본의 침공을 받고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그로부터 30여 년도 채 지나지 않은 17세기 초반에 대륙세력 여진족(女眞族)의 대대적 침공을 받았다. 정묘호란(丁卯胡亂)으로 불리는 첫 번째 침공은 1627년으로 국호를 ‘후금(後金)’이라고 부르던 시기며, 1636년의 두 번째 침공인 병자호란(丙子胡亂)은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바꾼 직후다. 이 병자호란 때 조선 국왕 인조(仁祖)와 조정 중신들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입성하여 최후의 수성전을 전개한 것이다. 후금은 1616년 건주여진(建州女眞)의 추장 누르하치(奴兒哈赤)가 세운 국가다. 앞서 명은 후금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정벌전쟁을 단행하였고, 조선에 지원군 파병을 요청해 왔다. 당시 국왕 광해군(光海君).. 2024.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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